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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 소개

메인 > 덕수궁 이야기 > 중명전 소개
이미지 - 최초 지어졌을 당시 중명전(1899 아펜젤러 촬영) : 배재학당 소장
중명전이 위치한 곳은 1890년대말 정동지역에 머물던 서양선교사들의 거주지였으나,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의 규모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담장 밖 궁궐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1897년 경운궁을 황궁으로 지정하고 건축 공사를 진행하던 중 경복궁의 집옥재와 같은 도서를 비롯한 보물 창고 개념(황실도서관 Imperial Library 용도)으로 계획되어, 1899년경 준공되었다. 준공 당시에는 서양식 1층 건물로 설계는 군사교관으로 초빙되었던 미국인 육군소장 출신 다이(William McEntyre Dye)의 아들이자 한성부 건축기사로 고빙된 다이(J.H. Dye)가 설계하였다 .

1901년 주변 건물인 문화각(文華閣)과 정이재(貞彛齋), 외(外) 화보(貨寶)와 함께 화재로 인해 전소된 후 정면과 양측면의 3면에 회랑이 있는 2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1925년 다시 화재에 발생하여 외벽만 남기고 소실되버리자 건물의 형태를 변형하여 재건하였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2009년 변형된 건물의 형태를 되찾는 복원공사를 실시하여 대한제국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중명전은 1904년 경운궁이 대화재로 인해 전소되자 황제의 거처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듬해 이곳에서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었다. 1907년 고종은 강제퇴위를 당하게 되는데, 순종이 황제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자 고종은 덕수궁으로 이어하였다.
1912년경부터 외국인을 위한 사교클럽(외국인구락부)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후,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서울클럽 등에서 사용하다 민간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2006년 문화재청에서 인수하여, 2009년 복원공사 실시, 2010년 전시관을 마련하여 대한제국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미지 - 오다쇼고, 「덕수궁사」(1938)에 소개된 중명전 이미지 - 이철원, 「왕궁사」(1954)에 게재된 중명전

중명전 전시관 소개

중명전 전시관 소개
1층
제 1실 중명전의 탄생
제 2실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1905)
제 3실 주권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
제 4실 헤이그특사의 도전과 좌절(1907)

중명전 관련 주요연혁

1899년경 정동여학당 터에 황실 도서관 용도로 수옥헌(현 중명전)을 준공함
1901년 11월 화재 이후 2층 건물로 재건 시작
1904년 4월 경운궁(현 덕수궁)이 대화재로 전소되자 수옥헌을 고종의 거처로 사용함
1905년 11월 을사늑약 강제 체결
1906년 1월 건물의 이름을 중명전(重?殿)이라 부르기 시작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파견(4월)을 빌미로 고종의 강제 퇴위가 진행됨
8월 영친왕을 황태자로 책봉
11월 고종, 덕수궁 준명전으로 이어
1915년 중명전을 외국인구락부에서 사용하기 시작함
1925년 화재로 전소. 재건
1963년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에게 기증
1976년 민간에 매각
198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
2003년 정동극장 인수
2006년 문화재청 인수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24호로 덕수궁에 편입
2009년 12월 문화재청 중명전 복원 완료
2010년 8월 일반개방